간호학 알쓸신잡

한국의 간호 역사② - 근대의 간호

집사냥 2023. 5. 24. 10:04

1876년 2월 26일 일본과 국교를 확대한 이후 다른 제국주의 열강들과 외교관계가 성립되면서 조선사회는 근대화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게 되었다. 조선은 일본에 수신사와 신사유람단을 파견하면서 서양의학에 관한 정보를 얻었다. 조선 정부가 서양의학과 의료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던 중에 미국 북장로교 선교의사로 청나라에 가 있던 의사 알렌이 우리나라에 오게 되었다. 고종 21년 금위대장이던 민영익은 보수파와 혁신파의 충돌로 자객의 습격을 당해 중태에 빠졌다. 출혈이 심한 민영익은 여러 명의 한방 의사들이 돌보았으나 별 효과 없이 생사기로에 놓여 있었는데 알렌의 수술로 3개월 후에 완쾌되었다. 이 사건이 제중원 설립의 계기로 작용하였다.

 

1.  제중원의 설립과 간호

1) 설립과 운영

알렌은 한국 정부에 서양식 병원을 개설할 필요성을 건의하고, 고종도 그 필요성을 인식하여 1885년 4월 15일에 공식적 개원이 이루어졌다. 이로써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병원 제중원(개원 당시 이름은 광혜원이었으나 일주일 후에 제중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이 탄생한 것이다. 1년 동안 외래환자와 왕진 환자의 수가 거의 만여 명에 달하였다고 한다.

 

1886년 제중원에 부인부를 신설하고 북장로교회에서 파송되어 온 엘러스로 하여금 담당하게 하였다. 엘러스는 제중원의 부인병을 담당하면서 왕비 및 왕실 부인들의 진료를 맡아 주어 대환영을 받았다.

2) 간호

1885년 4월 3일에 적용된 '광혜원 규칙' 역시 필요한 인력으로 간호사를 언급하지 않았다. 제중원 설립 직후 약제사 겸 간호사로 일한 사람은 선교사 언더우드였다. 당시 제중원은 전문적 간호보다는 전근대적인 '돌봄'으로서의 간호를 원했다. 그러던 중, 조선시대 남녀유별의 내외법 관습으로 여성 의료인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의녀 제도의 전통을 잇는 것이었다. 조선 정부는 알렌의 요청으로 황해도 평안도 감영에 공문을 보내어 13~16세의 총명한 기녀 2~3명씩을 선발, 상경케 했다.

 

이리하여 기녀 5명이 역사상 최초의 입학, 서양 의술과 간호학을 습득하게 되었다.

2. 선교계 병원과 간호

1) 선교계 병원의 설립

에비슨은 뉴욕에서 열린 만국 선교사회에 참석하여 한국에 새로운 서양식 병원과 의학교를 설치할 것을 제안하여 동석하였던 오하이오 주의 세브란스로부터 기금을 받아 병원을 건축하였다. 1904년 9월 3일에 세브란스병원이라고 하고 진료를 개시하였는데, 제중원의 명칭은 실질적으로 이곳에 옮기면서 세브란스병원으로 바뀌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서양의학은 왕립병원인 광혜원으로부터 시작되어 제중원의 시대를 거쳐 세브란스 병원을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1. 영국 성공회의 의료사업은 1892년 서울 남부 낙동이라는 곳에 셍메듀병원을 설치하여 와일스가 그 병원에서 외과를 담당하면서 영국 해군기지 병원의 일도 하였다.
  2. 미국 남감리교회에서 파견한 레이드 의사는 개성에 남성병원을 설립하였으며, 맥길 의사는 1896년에 원산에 구세 병원을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3. 미국 남장로교 의사 인골드가 1899년에 전주에 예수병원을 시작했으며, 목포에서는 애태원이라는 나병요양소를 설립했다.
  4. 미국 북장로교회에서 존슨 의사가 대구에서 진료소를 시작한 후 1906년에 병원을 신설하고 폴레쳐가 사업을 확장시켰다. 이것이 현 계명대학교 부속병원인 동산병원이며, 1909년에는 애락원이라는 나병원을 시작했다.
  5. 호주 장로회에서는 1904년 진주에 패톤기념 병원을 설립하였다. 그 후 1907년부터 나병 구제사업을 하였는데 매켄지 의사의 공로가 매우 컸다.
  6. 평양에는 1894년에 홀 기념 병원, 1905년에 캐롤린 래드 기념 병원이 설립되어 서북지방 의료사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7. 함흥에는 캐나다 장로교파의 크레어슨이 1900년에 제혜병원을 설치하여 함경남북도 의료의 중심을 이루었다.

천주교에서는 순조, 철종 때부터 소규모의 의료사업을 실시해왔으며, 1894년부터는 명동 천주교회 내 성바오로 수녀원의 사업으로 진료소를 시작했는데 이것이 현 가톨릭대학교 의학부의 전신이다.

2) 선교계 병원의 간호

우리나라에서 근대적 간호 사업을 시작한 사람은 1891년 첫 간호 인물로 도착한 영국 성공회의 히트코트였다. 히트코트는 이듬해 여의사 쿠크와 함께 부녀자를 대상으로 하는 작은 진료소를 경성 정동에 개설하였고, 이 병원이 나중에 성베드로 병원으로 명명되었다.

 

제중원이 세브란스로 이관된 후 담당 의사 에비슨은 환자 간호를 담당하고 조선 여성을 간호사로 양성할 수 있도록 유능한 간호사를 파견해 달라고 미국의 선교협회에 요청하였다. 이에 따라 1895년에 장로교 해외선교부에서 파송된 첫 간호사는 제콥슨이었다. 제콥슨이 사망 후 후임으로 부임한 쉬일즈는 미국 필라델피아 종합병원 간호학교 출신으로 나이팅게일 간호교육을 철저히 받은 인물이다. 36년 동안 고통에 시달린 수천의 사람들을 간호하고 위로했으며, 한국 최초의 간호 단체를 조직하였으므로 그를 '한국의 나이팅게일'이라고 불렀다.

 

간호사들은 '지시는 하늘의 첫째 가는 법'이며, 복종, 인내심, 친절은 꼭 지켜야 하는 것으로 배웠다. 이렇게 교육된 간호사들은 질병에 대처하도록 준비될 뿐 아니라 청결·친절·충성·온순하며 생의 목적을 더 귀한 것에 두도록 기대하였다.

3) 간호교육 시작

대부분의 간호사 양성소들은 만 3년간의 교육과정을 철저하게 실시하였다. 1주 48시간을 기준으로 강의와 병실 실습을 하였고, 입학 후 3~6개월 동안은 강의와 실습실에서 간호학 실습을 주로 하였으나 병실에서도 매일 2~3시간씩 실습하였다. 그 후 가관식을 한 다음 6개월에 한 번씩 1개월간의 밤 당번을 시작하고 3학년이 되면 졸업 간호사와 교대하며 모든 일을 책임지고 수행하였다.

 

  1. 정동 보구녀관의 간호교육 : 처음으로 간호원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교육은 교과서가 거의 없는 상태로 주로 임상 지도와 동료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실시하였다. 한국 최초의 가관식 행사는 1906년 1월에 보구녀관 대기실에서 양국 국기를 꽂은 가운데 내·외국인 여성들이 참석한 채 거행하였다.
  2. 세브란스 병원의 간호교육 : 학교교육의 목표는 충분한 교육을 받은 기독교 신자인 조선영성을 충실하고 유능한 간호사로 훈련시키는 것이었다.
  3. 대한의원 간호교육 :  대한의원의 설립 목적은 위생, 의육, 치병의 세 가지를 담당하는 것이었다. 대한의원의 조산사 및 간호사 양성이 우리나라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실시한 간호교육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