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학 알쓸신잡

한국의 간호 역사③ - 일제시대의 간호

집사냥 2023. 5. 24. 15:15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의 식민통치로 인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초기 개척기 간호사들이 시대적, 선구자적 사명감과 의지로 간호가 전문직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간호교육의 교육과정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하였고, 법적으로 면허가 제도화되고, 간호계 내에서는 다양한 조직들이 만들어지는 등 간호가 전문직으로 발전을 한 시기이다.

 

일본은 청·일 전쟁,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후, 일본식 제도와 특징을 가진 병원을 설립했다. 독일을 통해서 일본으로 들어온 일본식 간호는 선교사에 의한 미션계 간호의 도입 동기나 경위와는 다르게 강압적인 행정을 통해 들어왔고, 일본의 심한 남존여비 사상과 가족제도의 영향이 합쳐진 상태였다. 그래서 간호업무는 환자를 위한 간호보다 의사를 위한 보조에 치우쳐져 있었으며 간호사의 교육 수준도 매우 낮았고 교육과정도 환자의 전체적인 간호보다는 부분적인 간호 기술 중심과 치료 보조였다.

 

1. 간호관련제도

1) 위생행정

조선총독부의 보건 의료행정은 경찰관서에서 담당케 하여 경성의 경무총감부, 각 도 경무부, 각지 경찰관서에서 수준별로 경찰 위생 제도를 수립하였다. 그중 경무총감부의 보건계에서는 의사, 약제사, 산파, 간호부 등에 관한 사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전국적인 관립 의료시설망으로 경성의 조선총독부 의원을 최고기관으로 하고, 13개 도의 도청 소재지마다 자혜의원을 두었다. 1919년 전국의 관립 간호 학교 수는 약 10개, 2개의 지정학교, 기다 선교 계통의 간호학교 등이 있었다.

2) 간호면허제도

간호 면허 제도는 1914년 '산파 규칙'이 총감부령으로 산파 양성 제도와 시험을 통한 면허 제도가 규정됨으로써 시작되었다. 같은 해 10월 간호부 규칙이 발표되면서 간호부의 업무와 양성 제도가 제정되었다.

 

양성 기간은 간호부는 1년 반~3년, 산파는 1년 기간으로서 과정을 마친 후 국가시험에 합격하여 면허를 받게 했다. 이 시험 제도는 후에 속성으로 훈련받은 산파와 간호부를 위한 자격 검정이 되었고 일본 문부성이나 조선총감부 지정을 받은 양성소 졸업자는 무시험으로 면허를 획득하게 됐다. 

 

1922년 '간호부 규칙'의 전문이 개정되었다. 가장 큰 변화는 간호 면허 자격을 강화하고 간호 업무에 관한 규정을 추가한 것이었다. 주요 개정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첫째, 간호학교 입학 자격이 소학교 졸업 후 2년 이상의 중등교육 이수로 상향 조정되었다.
  • 둘째, 정규 간호학교에서 1년 이상 교과과정을 이수해야 면허시험에 응시하도록 하여 독학이나 취업 경험만으로는 자격을 받을 수 없도록 하였다.
  • 셋째, 응급상화에서는 의사의 지시가 없어도 치료기계와 의약품을 제공하거나 처방할 수 있도록 하였다.
  • 넷째, 면허 없는 자의 취업, 유사 영업을 불허했으며, 간호사의 개업 및 폐업의 등록을 엄격히 규정하였다.
  • 다섯째, 간호사 면허시험 과목을 신체적 구조 및 주요 기관의 기능, 간호 방법, 위생 및 전염병, 소독 방법, 붕대술 및 치료기계 취급 법, 구급처치 등으로 세분화하고 실기 시험은 삭제하였다.

2. 간호교육

관립 의원인 서울의 조선총독부 의원과 각 도 자혜의원을 중심으로 간호사와 조산사 교육 기준이 결정되고, 정책이 시행되면서 간호교육 과정이 체계화되었고, 간호교육의 수준이 향상되었다.

1) 관립 간호교육

1911년에 공포된 '조선총독부 의원 부속 의학 강습소 규칙' 을 통하여 조선총독부의원에서의 간호교육이 구체화되었다.

 

이 총독부 의원 부속 의학 강습소의 규칙 중 조산부과와 간호부과에 관한 내용은 일제강점기 최초로 정부가 규정한 간호교육에 관한 제도로서 의미가 있지만, 조선총독부 의원에만 한정된 간호교육 방침이었다.

 

지방의 관립 간호교육은 1913년에 제정된 '조선총독부 도 자혜의원 조산부 및 간호부 양상 규정'으로 제도화되었다. 이 규정에서는 각 도 자혜의원 조산부과, 간호부과의 속성 조산부과를 두도록 하였다. 이중 속성 조산부과는 조선총독부 의원에는 없었고 지방의 여건을 반영하여 시급히 조산 인력을 양성할 수 있도록 마련한 제도였다.

2) 사립 간호교육

1920년대에는 준비된 간호사가 부족하여 간호사 양성이 시급하였다. 조선총독부에서는 간호사를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하여 교육령을 개정하고 입학 자격을 완화하거나 교육기간을 일본과 같은 수준으로 하여 사립 간호학교에서도 학생의 입학 자격과 교과과정 등에서 관립 간호학교 정도의 수준을 충족시키면 졸업생이 무시험으로 면허를 취득할 수 있도록 하였다. 사립 간호학교에서는 조선총독부의 인가를 받고자 노력하였고, 1920년대부터 사립 간호교육기관의 인가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3. 병원간호

일제강점기의 병원은 설립 운영 주체에 따라 조선총독부에서 직접 운영한 관립 병원, 지방기관에서 운영한 공립 병원, 그리고 사립병원으로 나눌 수 있다.

 

일제강점기의 관립 및 도립병원은 1910년 이후부터 건립되기 시작하였으나 이 병원들은 한국 거류 일본인을 주된 대상으로 하였기 때문에 한국인에게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다. 러·일 전쟁이 끝난 1905년 이후부터 여러 곳에 병원이 설립되었다.

  1. 관립 대한의원 : 조산사 및 간호사 양성을 위한 조항이 갖추어져 있었다. 
  2. 동인 의원 : 일본 동인회 계통으로 1906년 대구와 평양에 개설되어 각각 임상진료과를 두고 간호사와 조산사의 양성을 시도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였고, 그 후 자혜의원으로 인계되었다.
  3. 철도병원 : 1907년 용산 동인 의원(교통병원의 전신)으로 설립되어 철도 직원과 그 가족들을 진료하였는데, 1926년에는 철도병원으로 개칭하고 조산사 양성소를 부설하였다.
  4. 경성의전 부속병원 : 1928년에 총독부 병원이 제국 대학병원(현 수도 육군 병원 본관)으로 되면서 경성의전 학생들의 실습병원으로 개원되었다. 각 과를 개설하고 조산사와 간호사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으로 운영되었다.
  5. 적십자병원 : 구 한국 정부가 적십자 국제기구에 가입(1904) 하고 1905년 서문 밖에 대한 적십자 병원을 설립하였다. 이 병원에는 간호부장, 간호사 등 환자 간호를 위한 직제를 마련하였다. 1909년 대학 적십자는 일본 적십자와 합병하고 병원을 일본적십자 조선 본부 병원을 존속시켰고 간호사와 조산사를 양성하기 시작하였다. 1920년에는 응급구호 간호인력을 양성하고 수료식을 가졌다.
  6. 도립병원 : 도립병원들은 본래 자혜의원으로서 조선총독부 직이었다.
  7. 소록도 자혜병원 : 첫 관립 나병요양소로 1917년 전남 고흥군 내섬에 설립된 병원이다.

 4. 보건간호

초창기의 보건 간호는 1923년 기독교 공중보건회관인 태화여자관에서 시작되었는데 동대문 부인병원 간호학교 졸업생인 한신광 간호사와 선교사인 로젠버거 간호사가 각 가정을 방문하여 환자들을 간호하고 어머니와 어린아이들의 건강을 돌보는 형태로 시작되어 알려졌다.

 

이후 이 사업은 거의 모든 간호부 양성소들이 참여하고 조선 간호부회가 지원하는 가운데 지방까지 파급되어 육아 건강관리, 산전 간호, 방문간호, 건강진단, 학교 건강 교육, 가난한 어린이들을 위한 무료 목욕탕, 우유 공급소, 년 1주의 전염병 예방접종을 위한 어린이 주간 설치 등 다양한 사업을 내용으로 크게 확장됐다.

 

태화여자관의 보건 간호 사업은 1926년에 공중위생 강습회를 개최하였고 1929년에는 세브란스병원, 동대문 부인병원과 연합하여 '경성 연합 아동 건강회'를 조직하였고, 세브란스 병원과 동대문 부인병원에서의 간호사, 의사 등을 지원받아 진료, 입원치료, 보건상담, 출장 강좌 등을 하였다.

5. 간호전문직 단체조직

서양인 간호부 수가 점차로 증가되고 조직체 구성의 필요를 느끼게 됨에 따라 재선 서양인 졸업 간부회를 1908년에 창립하였다. 1922년 4월에 개최된 총회에서 조선과 서양 졸업 간호부를 조직하기로 하고 1923년 '조선 졸업 간부회"를 결정하였다. 이때부터 비로소 한국 간호사가 정식으로 조직적 활동을 시작했으므로 이 1923년을 대한간호협회의 창립연도로 삼게 되었다.

 

조선 간호부회는 초기 사업의 중점을 간호교육의 표준화, 교과서 출판 등 간호교육을 확립하는 데 두었고, 간호교육을 확립시키는 사업과 함께 보건 간호 사업, 사회사업에도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29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ICN 총회에 한국 간호사로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이효경, 이금전 두 간호사가 참석,  ICN 가입 신청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일본에 주권을 빼앗긴 국가로서 일국 일회원권 원칙에 따라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